[칼럼] 26년의 세월을 뒤로하고... 어느 ‘폐업 포스터’가 건넨 슬픈 고백포스터 한 장에 담긴 소상공인들의 고뇌
[조정환ㆍ철학박사] 거리에서 흔히 마주치는 ‘폐업 정리’ 포스터는 대개 자극적인 문구로 발길을 붙잡는다. 일정 기간 장소를 빌려 떴다방 식으로 물건을 파는 이들에게 ‘폐업’은 그저 마케팅 수단일 때가 많다. 필자 역시 유명 브랜드 세일이라는 말에 혹해 찾아갔다가 정작 살만한 물건이 없어 실망하며 돌아섰던 경험이 적지 않다.
그런데 최근 필자의 시선을 멈추게 한, 유독 마음을 아리게 만드는 포스터 하나가 있다. 화려한 할인 문구보다 더 크게 다가온 것은 "평택에서 26년간 함께했습니다”라는 짧은 문장이었다.
언뜻 생각하면 고개가 갸웃거려질 수도 있다. 현재 매장이 입주해 있는 건물은 그리 오래된 건물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숫자의 의미를 이해하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들은 지금의 자리로 옮겨오기 전, 지역민들의 추억이 깃든 ‘패션타운’에서 오랜 시간 우리 곁을 지켰던 상인들이기 때문이다.
지금의 번듯한 아울렛으로 변모하기 전, 그 자리에서 평택 시민들의 옷가지를 책임졌던 그곳. 26년이라는 숫자는 단순히 영업한 기간을 넘어, 우리 이웃들이 그곳에서 일하고, 가족의 옷을 고르며 쌓아온 삶의 궤적이었다.
새로운 건물로 터를 옮기며 희망을 품었을 그들이, 이제는 긴 세월을 뒤로하고 마침표를 찍으려 한다. 문득 ‘그들이 예전 그 자리에서 그대로 머물 수 있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부질없는 가정이 머릿속을 맴돈다. 익숙했던 공간이 사라지고 터전이 바뀌는 과정에서, 어쩌면 우리는 지역의 소중한 자산인 ‘시간의 힘’을 잃어버리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만약 이들이 화려한 변신 대신 예전 그 자리의 모습으로 조금 더 투박하게 머물러 있었다면, 오늘 이런 슬픈 포스터를 붙여야 했을까.’ 급변하는 시대와 거대 자본의 흐름 속에서 지역의 역사를 간직한 터전이 사라지는 것은 비단 한 기업의 실패가 아닌, 우리 지역 사회가 함께 겪는 상실이다.
포스터 속에 담긴 26년은 단순한 영업 기간이 아니다. 평택 시민들과 함께 호흡하며 쌓아온 희로애락의 기록이다. 그 마무리가 ‘폐업’이라는 쓸쓸한 단어로 끝맺음 되는 현실이 못내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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